April 30, 2019

뮌헨 맥주 여행

학과에서 단체 견학으로 4/21부터 29까지 약 일주일 독일 뮌헨에 다녀왔다. 지난 학기 센서리 과목을 맡았던 아드리안 교수가 인솔했는데, 예전에 독일에서 수학한 경험이 있는 분이라 견학 프로그램을 알차게 짜주셔서 재밌게 다녀옴.

뮌헨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는 역시 헬레스. 그리고 바이에른 지방이 예로부터 사랑한 밀맥주.

헬레스의 역사를 소개하면: 지금 세상을 지배하는 라거 맥주의 오리지널은 맥주의 왕 보헤미안 필스너인데, 이 필스너 라거의 전신이 비엔나의 비엔나 라거와 뮌헨의 마르첸(Marzen) 이다. 드레어(Dreher)와 세드마이어(Sedlmayr)라는, 각각 비엔나(드레어 브루어리)와 뮌헨(스파텐 브루어리)의 유명 브루어리 후계자들이 영국 견학을 갔다가 영국의 크리스털(카라멜) 몰트 몰팅 비법을 훔쳐와서 만든 맥주들로(비엔나 라거는 신제품, 마르첸은 몰트가 개선되었다) 보헤미안 필스너 전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1845년 보헤미안 필스너가 등장하자마자 시장은 빠르게 평정되고, 세드마이어의 스파텐 브루어리는 필스너 대항마로 헬레스를 출시하게 된다. 1894년의 일이다.
헬레스는 필스너와 거의 비슷한 투명도와 색깔, 탄산감을 가졌지만 몰트가 미세하게 더욱 강조되었다. 어쨌든 둘다 비어가든에서 소시지 하나 앞에 놓고 1리터잔으로 벌컥벌컥 마시는데는 최고의 맥주다.

홉의 고장 할러타우(Hallertau)의 들판에 끝도 없이 펼쳐진 홉밭들

뮌헨 시내 거의 블럭마다 하나씩 있는 아우구스티너(Augustiner) 비어홀. 헬레스는 물론 말이 필요없지만 필스도 정말 잘 만들었다. 

1. Kuchlbauer 브루어리(http://www.kuchlbauer.de/en/)

14세기에 문을 열었다는 중소규모의 밀맥주 전문 브루어리. 브루어리 옆 비어가든에 세워진 괴상한 탑이 시선을 끈다. 바바리안 맥주 정신의 정수를 담았다고 한다... 이 탑을 설계한 건축가는 약간 괴인적 면모가 있는데 브루어리 오너와 쿵짝이 잘 맞았던거 같다. 지하 셀러룸에는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카피 벽화가 있는데, 느닷없이 다빈치가 그림에 숨겨놓은 신비한 코드를 해설하는 비디오가 나온다. 그 밖에 불빛이 나오고 움직이면서 노래를 부르는 드워프 양조사 인형들을 구경할 수 있다. 맥주 순수령을 지키지 않은 나쁜 양조사들이 가는 지옥 모형도 있고, 바바리안 맥주의 신령이 눈을 번쩍거리며 맥주 마시고 착한 사람 되라는 설교도 한다. 어린이들이 좋아할거 같다. 
탑에 올라가면 시원한 전경이 펼쳐진다. 



 2. Weltenburger 수도원(https://www.weltenburger.de/)

1050년 이래 전통을 지켜온 수도원 맥주. 사실 기원을 그보다 더 거슬러갈 수 있는데 고고학적 증거가 뒷받침 되는게 1050년까지라고 한다. 
모델 개념의 자그마한 브루어리가 있지만 대부분의 양조는 위탁을 준다. 
다뉴브 강을 끼고 절벽 아래 호젓하게 들어앉은 수도원의 위치가 아주 멋지다. 강변에는 지역 주민들이 산책과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성 조지에게 바쳐진 예배당은 화려한 바로크 스타일이다. 한쪽 벽면엔 신대륙 원주민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비뚤어진 열정이 그려져 있다. 
지하 셀러룸의 퍼멘터에서 직접 뽑아낸 둔켈복(Asam bock)을 맛보고, 수도원의 안뜰에서 둔켈(Baroque dark)을 마셨다. 중세 수도원에 왔으니 조상님 맥주인 둔켈을 마셔야지.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이라 깔끔하고 구수한 둔켈이 술술 들어갔다. 



3. Weihenstephan 브루어리(https://www.weihenstephaner.de/en/)


 Since 1040, 세계 최고(古)의 브루어리로 자칭하는 바이엔슈테판 브루어리. 수도원으로 출발한 이곳은 지금 바이에른 주가 소유한 주립 브루어리이며 교육기관, 연구기관을 겸하고 있다. 오래된 캠퍼스의 분위기도 멋지고, 산등성이에 올라선 캠퍼스에서 내려다보이는 전경 또한 추천할 만하다. 햇빛이 따가워 학내 레스토랑의 야외석에서 맥주를 즐기기 최고의 날이었다. 다음 일정 때문에 그러진 못했지만... 
아래 사진의 근사한 탭룸에서 오리지널 윗비어, 헬레스, 바이스복(Vitus) 등 다양한 맥주를 시음할 수 있었다. 산처럼 쌓이는 무스한 헤드와 부드러운 텍스처, 헤페 이스트 특유의 바나나, 클로브 향이 일품이었다.
독일어로 이스트가 헤페라는걸 그날 알았다.

브루어리 투어를 도와준 맥주학교 학생들의 공식 폴로셔츠가 너무 멋져서 기념품샵에서 한장 질렀다.


5천 킬로 몰트에 300 헥토리터(3만 리터) 워트. 열원은 스팀이고 증발률이 9%. 전공정 자동화. 

4. Schneider Weisse (https://schneider-weisse.de/en)

중소규모의 가족 경영 브루어리인 슈나이더를 방문했다. 밀맥주 전문인 이곳에서 드디어 오픈 퍼멘터를 실제로 볼 수 있었다.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규모였다. 카푸치노 거품 같은 거대한 크라우젠이 정말이지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아래 사진의 거대한 스푼으로 이스트를 걷어내 다음 발효에 쓴다고 한다. 
현 오너인 슈나이더 5세가 아마추어 화가라 라벨을 직접 그려 디자인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걸 물어보니까 마케팅 팀에서 반대해서 최근 라벨을 교체했다는 말을 들었다. 마케터가 진정 회사를 생각하는 충신이다 싶었다. 
시음 인심이 진짜 후해서 산더미 같은 프레첼과 함께 실컷 먹고 마셨다. 레귤러 맥주들도 모두 맛있었지만, 리미티드 에디션을 보면 여느 오래된 브루어리들 같지 않게 신선한 시도를 많이 하는 회사인것 같다. 뉴질랜드 홉인 넬슨 소빈을 넣은 밀맥주, 와인 배럴에 숙성해 펑키한 캐릭터를 낸 밀맥주가 훌륭했다.   





슈나이더를 나와서, 1516년 4월 23일에 반포된 맥주순수령을 기념하는 축제에 갔다왔다. 프라이징(Freising)은 작은 도시라 축제도 뭐 작은 지역 축제 같았지만 떠들썩한 분위기가 좋았다. 남녀노소 전통복장을 입고 손마다 무거운 유리잔과 감자튀김을 들고 흥겹게 맥주를 마신다. 첫잔엔 2유로의 보증금이 붙는다. 

5. Weyermann (https://www.weyermann.de/eng/) 아 여긴 진짜 홈페이지 좀 어떻게 했으면 

크래프트 맥주 팬이라면 익숙할 바이어만 몰스터리. 가족경영 중소기업으로, 미국 크래프트 비어 붐에 힘입어 도약한 덕에 크래프트 비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곳이었다. 1879년 설립 당시의 부지와 건물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보는 눈이 즐겁다. 창업자 일가가 살던 맨션은 지금은 사무실로 쓰이고 있지만, 아이들이 뛰놀던 정원과 수영장은 건재하고 현재는 직원들의 기쁨을 위해 쓰이고 있다고. 
기업 컬러인 빨강과 노랑으로 꾸며진 부지는 일행이 입을 모아 '브루어를 위한 디즈니랜드'라고 부를 만큼 구경거리가 많은 곳이었다. 기념품샵엔 바이어만 로고와 몰트백을 재활용한 깜찍한 소품들이 지름신을 부른다. (지갑 꽉 쥐고 참았다) 누구든 밤베르크에 간다면 꼭 추천하고 싶다.  



브루어리의 가장 큰 적은 화재다. 몰스터리도 마찬가지! 화재를 막아준다는 독일의 중세 부적 '브루어의 별'. 이건 오망성이지만 육망성도 흔하다. 육망성은 다윗의 별과 종종 혼동되곤 한다. 


바이어만이 위치한 밤베르크는 스모크 비어로 유명한 곳이다. 모델 브루어리에 레시피가 공개되어 있다. 각 종류의 몰트에 병기된 타입은 숫자가 클수록 강한 로스팅이 가해졌다는 뜻. 학교에 스모크 몰트 재고가 있는지 보고 다음에 집에서 만들어 봐야겠다. 
바이어만에는 특허 상표가 많다. 각국의 특허 증명서를 모아놓은 벽을 지나쳤는데, 한국에서 발급한 증명서도 여럿 눈에 띄었다. 그 중 'Sinamar'는 몰트 추출물로 만든 색깔 첨가제다. 맛과 향의 변화 없이 색을 더할 수 있어, 슈바르츠비어나 블랙 IPA같은 맥주에 쓰기 딱이다. 몰스터리에는 이 시나마를 제조하는 브루어리와 베이커리가 딸려 있었는데 위생 문제로 직접 견학은 할 수 없었다. 
대신 보리를 발아하는 '살라딘 박스'와 거대한 드럼 로스터 기계, 몰트 포장 라인 등을 두루 둘러보고 몰스터리 소유의 파일럿 브루어리에서 만든 맥주와 바이에른 햄과 치즈를 곁들인 환상적인 샌드위치를 대접받았다. 
크래프트 비어 지지자답게, 이곳의 시음 메뉴에는 맥주순수령에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코리앤더 맥주 같은 것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경우 라벨에는 맥주가 아닌 '몰트로 제조한 알콜 음료'로 표기된다고 한다. 재밌는 법이다. 
밤베르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도시이기도 하다. 지역 사이즈 대비 브루어리 밀도로 세계 1위라고도 한다. 일정에 쫓겨 이 아름다운 중세 도시에서 자유 시간을 허락받지 못한게 정말 아쉬웠다. 

6. Schlenkerla Smokebeer (https://www.schlenkerla.de/indexe.html#)

가장 먼 문서 기록이 1405년에 이르는, 밤베르크의 스모크비어(라우흐비어) 명가. 풍부한 훈연향이 햄과 베이컨을 입에 문 듯한 착시를 불러 일으키는 멋진 스모크비어를 만든다. 이곳은 아직도 스모크 몰트를 직접 구워 쓰고 있다. 아래 사진의 화덕이 스모크 몰트를 훈연하는 곳이다.  80년째 현역인 15헥터 사이즈의 코퍼 브루하우스는 겉보기엔 앤틱이지만 완전 자동화로 개조되었다. 중세에 맥주를 라거링했던, 8백년 역사의 지하 셀러룸은 2014년형 번쩍거리는 스테인리스 퍼멘터들로 채워져 있다. 억소리나는 23,000헥터리터 사이즈 BBT가 비좁은 중세풍 건물 아래 마법으로 갖다놓은 듯 들어앉은 모양이 장관이었다. 중세 태번 건물과 최신식 장비가 보여주는 대비가 매우 멋졌다.




세계적인 홉 공급회사 홉스타이너에 갔다. 홉 산지의 농장에서 보내온 60kg 들이 리프홉은 냉동, 분쇄, 압착 등의 공정을 거쳐 우리가 흔히 쓰는 펠렛 타입 홉으로 제조된다. 에탄올이나 CO2로 비터니스만을, 혹을 아로마를 강조한 다양한 엑스트렉트 추출물도 제조되고 있었다. 특히, 갈색이 아닌 유리병을 쓰는 맥주들은 자외선으로 홉성분이 변질되어 스컹크 악취 같은 변질이 일어날 수 있는데, 이를 방지하려면 이곳의 특별한 홉 엑스트렉트를 첨가하는게 필수다. (하이네켄은 예외다. 그냥 특징으로 밀어붙인다고 함)
홉의 향과 맛 성분은 산화와 열에 약하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 배송을 기다리는 홉 재고들은 산소농도를 낮춘 무인창고에 들어가 있고, 펠렛 제조 공정은 영하 20도로 유지되는 격리실에서 이루어진다. 


분쇄된 홉반죽은 파스타 밀듯이 위와 같은 틀로 뽑는다. 

8. Urban Chestnut Hallertau (http://urbanchestnut.de/startseite/)

이 조그만 크래프트 브루어리는 미국 미주리주의 동명 브루어리의 독일 위성회사라고 한다. 지난 수십년간 매출부진으로 지역의 많은 브루어리들이 문을 닫았고, 이곳 역시 90년대 문을 닫은 지역의 소규모 양조장 시설을 인수해 재오픈한 곳이라고. 
모든 맥주는 오픈 퍼멘터에서 1차 발효를 거치고 코니컬 퍼멘터에서 2차로 숙성된다. 헬레스, 라거, 페일에일 세 종류의 맥주를 만드는데, 이곳의 젊은 헤드 브루어 말로는 지역 주민들의 보수적인 입맛과 크래프트 맥주의 도전정신을 조화시키는 게 큰 숙제라고 한다. (페일에일이 괴상한 외국맥주 되는 현실...)
홉스타이너 여러분 덕에 브루어리에 딸린 비어가든에서 맛있는 식사를 대접받았다. 가족단위 손님들이 주말 나들이를 즐길 수 있게 오리가 떠다니는 연못, 토끼장에 닭장이 있고 아이들 세발 자전거도 잔뜩 있었다. 마침 소나기가 지나가고 날이 맑게 개어 보기 좋았다. 


브루하우스. 신기하게 왼쪽이 매쉬/케틀이고 오른쪽이 라우터, 그 아래가 월풀이다. 매쉬/케틀 부분에만 스팀이 연결됨. 워트를 라우터로 쐈다가 다시 불러들여 끓여야 하는데 청소를 민첩하게 해야할듯! 

식탁에 야채를 허락지 않는 바바리안의 식사다!

오라오라오라

9. 그 밖에

세계적인 패키징 장비/솔루션 업체 크론과 그 자회사인 Steinecker (https://www.krones.com/en/products/innovations/steinecker-brewnomic.php) 에 방문했다. 모델 브루어리에 줄지어 늘어선 최신식 설비들에 눈이 돌아가는줄 알았다. 명차 전시장에 들어간 기분? 마이크로 브루어리 사이즈부터 직경이 11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탱크를 조립하는 공장을 쭉 견학하면서 자연스레 용접을 배우면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촬영이 허용되지 않아 찍은 사진은 없음.


뮌헨 기차역 앞에서 너무너무 맛있는 버거와 감튀를 파는 곳. 커리부어스트를 못 먹고 온게 아쉽다. 

마지막 날은 호텔 근처 공원에서 열리는 카니발에서 작별의 헬레스를 한잔 마셨다.


이래저래 총 경비는 195만원 정도 들었다. 현지에서 쓴 비용은 240유로 정도? 근데 나는 지갑 꽉 쥐고 버틴거라 좀더 넉넉하게 가져가면 좋음.
우리 학과에서도 매년 있는 여행이 아니라 이런 기회 없이 졸업하는 학생들도 많은데 운때가 잘 맞아서 평생 기억에 남을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잘 쉬고 3학기 준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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